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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Z 스토리 2 - [24]회
    2019-10-05
    가장 평화롭지 않았던 그곳에 만들어진 길... 고성과 철원에 이어 8월 10일, 세 번째 평화의 길이 열렸다. 특별히 이 길은 800만 실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장소인 임진각에서 시작되는 길로 그 의미가 무척 크다. 바로 통일대교를 건너 도라전망대와 GOP 통문, 5.16 철거GP 등 민통선 이북지역과 철거 GP를 넘나드는 둘레길 코스인 ‘파주 평화의 길’이다. 파주 구간은 6.25전쟁 당시 흔적을 보여주는 시설과 기념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분단의 상징으로 장단역에서 폭격을 받아 반세기 동안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던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임진각에 전시되어 있고, 디엠지(DMZ) 평화의 길 통문에서 철거 감시초소(GP)로 이동하면 전쟁 당시 구 장단면사무소의 피폭된 모습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파주 구간은 퇴역 군인들이 안내요원으로 동행하면서 기존의 안보관광과는 차별화된 경험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4·27판문점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한 결과, 일반인에게 차례로 평화의 길을 개방한 지 어느덧 반 년이 가까워오고 있는 지금, 평화의 길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화가 길이다’라는 간디의 말처럼 평화의 시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고 이 길을 걸어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보이는 군사분계선, 경의선 도로와 경의선 철도... 그리고 남북 교류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까지... 이토록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고향과 가족 친지들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실향민들. 그들은 70여 년 전, 가장 평화롭지 않았던 그 길 위에서 평화를 염원했던, 그리고 염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어제처럼 또렷한 기억의 저편, 망향의 길에서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 DMZ 스토리 2 - [23]회
    2019-09-28
    평창남북평화제 기간 동안 개성공단 관련 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회에서는 개성공단에서 함께 생활했던 남북 노동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과 서로 주고받았던 선물까지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개성공단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또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통일의 시험대로 불린다. 그리고 실제 개성공단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날마다 통일이 이뤄지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통일의 경험’이란 과연 무엇일까? 개성공단에서 10여 년씩 근무한 혹은 근무했던 남측 주재원들, 이들의 육성을 통해 현장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개성공단의 속살, 북측 근로자들의 민낯, 그리고 남북 근로자들이 함께 부대끼면서 날마다 작은 통일을 이루어가는 기적의 현장을 확인해본다.
  • DMZ 스토리 2 - [22]회
    2019-09-21
    “군사분계선은 없다.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 유엔사 특별고문(1953~1994년)이었던 이문항은 그의 저서에서 군사분계선은 없다, 라고 말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글자 그대로다. 군사분계선은 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고 표식물로만 표시되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이 대화를 나누었던 도보다리 근방의 녹슨 표식물이 군사분계선의 정체인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후 설치된 군사분계선 표식물 1292개, 그러나 휴전 이후 오랜 세월 제대로 보수나 교체를 하지 않은 표식물이 제대로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분단 이후 남북 간 잦은 교전과 충돌은 명확하지 않은 군사분계선 표식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1997년 대성동 주민 2명이 도토리를 줍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북한군에 끌려간 사건 역시 군사분계선이 명확히 표시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사에서는 MDL프로젝트(2014~2016년)를 진행해 군사분계선을 확정한 상태다. 정전회담 과정의 군사분계선 탄생의 비화, 명확하지 않은 군사분계선으로 인한 남북 충돌사건 등을 짚어본다. 또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군사분계선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 DMZ 스토리 2 - [21]회
    2019-09-14
    남북 분단의 아픔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화군에는 망향대를 찾는 실향민들처럼 이산가족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가 살고 있다. 바로, 강화군 서쪽에 위치한 섬 ‘볼음도’의 북동쪽 바닷가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그것. (높이 약 25미터, 둘레 약 9미터의 거목으로 수령은 약 800년으로 추정) 은행 열매도 열지 않는 이 할아버지 은행나무(수나무)는 약 800년 전쯤 불가피하게 북녘에 아내를 두고 내려왔다는 남편 나무다. 현재, 아내 은행나무(암나무)는 볼음도에서 불과 7~8km 거리의 북녘 땅, 황해남도 연안군에 살고 있다. 이 부부 은행나무는 어떻게 이산가족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해마다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는 부부 은행나무.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는 그 어떤 소식도 전하거나 들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수많은 실향민들처럼, 그렇게 부부 은행나무에게도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지난해 8월, 볼음도와 금강산에서 뜻 깊은 만남이 이뤄졌다. 2015년 중단됐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재개된 것이다. 그리고 볼음도에서는 몇 백 년을 헤어져 지내온 은행나무 부부가 멀리서나마 서로의 안부를 전할 수 있도록, 일 년에 한 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그날(칠월칠석)에 은행나무 부부를 위로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평화를 향한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는 한가위를 맞아, 지척에 고향을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강화지역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전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평화를 향한 한 걸음 한 걸음들이 모여 평화로 풍성한 한가위가 되길... 그래서 남과 북 모두가 함께 하는 한가위가 되길... 한반도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보름달을 보며 빌어본다.
  • DMZ 스토리 2 - [20]회
    2019-08-31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있어 비공식적인 애국가다. 내 생각에 남과 북이 전쟁을 하고 서로 나뉘어 살고 있지만, 두 개의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피트 시거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이라는 고난 속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노래였던 아리랑.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후 퇴장하는 순간 양측 군악대가 연주했던 음악도 아리랑이었고, 2000년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남북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는 순간에 아리랑은 늘 함께 했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동해안 최북단 고성에서 다시 시작된 평화를 향한 노래. ‘DMZ 평화:울림’ 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아리랑 대축전은 DMZ 평화지역에서 하나된 아리랑 함성을 통해 민족 동질감을 회복하고, 평화와 미래를 만들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18개 시·군의 강원도민들의 합창으로 만든 버추얼(Virtual) 영상에서 연변·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 아리랑까지 분단되기 전 하나였던 아리랑이 다채로운 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전한다. 이념과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될 그날까지 함께 할 우리의 노래, ‘아리랑’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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